2008년 01월 12일
건조한 목소리
- 지금부터 적는 글은 어제 있었던 일을 어떠한 왜곡됨 없이 적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
교정기를 붙이고 휴가 나온 영찬이를 만났다. 계절학기 때문에 매일 보는 사람들을 제쳐두고 역설적으로 6개월만에 보는 영찬이가 교정기를 붙인 내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저녁도 먹고, 카페도 가서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었다. 10시가 좀 넘어서 약속 장소였던 부천에서 출발했다. 11시 경 목동역 도착. 내일 휴가가 끝나 들어간다는 광엽이를 목동역으로 불러 피쉬앤그릴에서 매화수 한 병과 육해공 꼬치를 시켰다.
처음 먹은 매화수, 백세주 같을까 불안했었는데 맛있었다. 그런데 영찬이는 싫어한다고 했다. 하지만 치과에 다녀온지라 한 잔의 1/4도 못 먹었다. 하지만 굳이 광엽이는 한 병을 다 비워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시간 밖에 못 만나 미안했는데 굳이 자기가 돈을 지불해버렸다. 남자란, 뭐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나는 사람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내가 눈 마주침을 피하게 된 것이다. 꼭 남자하고 얘기할 때만 그렇다. 내 밑바닥까지 들켜버리는 느낌, 발가벗겨진 느낌. 상대방이 내 불안까지 알아차릴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집에서 혼날 거라고 해도 광엽이는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김영하의 소설을 읽은 후로 술을 마신 남자 혹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어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두려워졌고 12시 10분을 조금 넘겨 자리서 일어났다.
그 전에, 11시 반 쯤이었던가. 집에 있던, 기운 없는 목소리의 엄마와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치고 난 광엽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목소리에 힘이 없네, 자다가 일어났나봐. 하하하…"
12시 반을 좀 넘겨 귀가했다. 평소 같으면 불호령이 떨어져야 하는데 엄마는 웬일로 반갑게 날 맞아주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술 마신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교정기를 하고서 입이 제대로 다물어지지 않는 나를 보고 엄마는 웃었다. 정말 많이 웃었다.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울기 시작했다. 엄마의 콧등엔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한 멍이 들어 있었고, 엄마의 코를 지난 휴지에는 콧물로 바랜 피가 섞여 있었다. 엄마는 말했다. "너희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
말다툼과 폭력의 발단은 내 교정비를 송금하는 과정에서 통장 번호를 잘 알지 못했던 엄마가 아빠에게 연락함으로부터 빚어졌다. 통화음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 언성을 높였던 엄마는 아빠에게 욕을 얻어 먹었고, 그게 집에 오니 커졌고, 아빠가 폭력을 행사하고 집을 나가버리는 것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건넌방에 동생이 있나 없나는 이미 내 관심 밖이었다. 내 동생은 이미 중재자로서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엄마가 동생을 혼낼 때, 아빠는 엄마에게 혼나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동생에게 말한다. 반항하라고, 우리 같이 복수하자고. 내가 영찬이와 광엽이를 만났을 때 엄마는 혼자서 남동생과 아버지의 공격을 받았다.
아빠의 사정도, 엄마의 사정도 나는 잘 안다. 대화 방식의 문제다. 아빠는 돈에 집중하는 엄마에게 정이 없다며 질려버렸고, 엄마는 자신은 물론 다른 가족에 대한 배려심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아빠에게 질려버렸다. 그러나 부모님은 한 번도 이 문제를 가지고 제대로 이야기 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거대하고도 날카로운 진실 앞에 서기 두려워하는 탓일 것이다. 내가 중재자가 되기엔 너무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전문 상담사가 필요하다. 아니면 차라리 서로에게 편지라도 써야했다.
아빠가 없는 집에서 엄마는, 노후에 아빠와 함께 할 계획이 없다고 얘기했다. 난 공감했다. 아빠도 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테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윽고 엄마는, 이제 막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배운 아빠와 엄마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을 들려주었다. 엄마가 이혼하자고 했다. 아빠의 답은 이랬다 - 세라도 성호도 이제 어른이 되었다. 때문에 나는 이제 날개를 달았다. 쓰레기 같은 년.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아이들은 마음대로 술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릴 것이고, 어떤 아이들은 더이상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됨을 떠올릴 것이다. 난 어땠냐고? 부모님이 이혼해도, 제3자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떠올렸다. 그 자유는 거의 희열에 가까운 것이었다.
난 어제, 내가 몇 년 동안 생각해온 말을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꺼냈다 - 엄마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세 번. 자식이 있다고 해서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내 목소리는 너무 건조했다. 건조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성대에 눈물을 머금지 않았다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을 여러 번 생각하게 되면 무뎌진다. 때문에 두려운 것은 없었다.
자리에 누웠다. 근 몇 달간 난 무서운 것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한 가족의 파괴를 무덤덤하게 얘기하는 내가 두려워졌다. 그리고 내 머리 속 언저리에 스쳐간 것은, 11시 반 경에 받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그렇게 힘이 없었던 것은 엄마가 자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맞아서 울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의지할만한 남자를 찾는 대신 난 김영하의 소설을 택했다. 김동인, 김동리 이후로 좋아하는 소설가 세 번째 등재. 그의 소설은 하나하나가 자극적이다. 여자, 담배, 차, 총, 살인, 그리고 엘리베이터. 뭔가에 빠져버린 인간들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충격을 맛보려고 소설책을 드는 것 같다. 하지만 난 무언가에 빠져버릴 수 없는 고통을 지닌 동족을 만난 기쁨을 느끼며 소설을 읽는다. 처음엔 날 선 몇몇 문장에 열광했던 내가, 그래서 지금은 스토리를 따라간다.
국어교육과 교수들은 이상하다. 2명이나 나에게 똑같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들은 내 눈빛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 사디스트라도 되는 양 학점은 항상 미소의 횟수와 반비례다. 그들이 왜 웃는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이렇게 슬픈 일이 있던 나에게 머리를 툭 치며 프린트를 안 가져왔다며 시비를 걸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옆의 언니가 말해주었다, "제가 안 가져온건데요." 그러니 교수는 표정의 변화 없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건조한 표정으로 "미안"하고 돌아섰다. 눈물이 났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숨기고, 마음먹고 잘해보려 해도 욕을 먹는다. 그러나 학교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은 패배한 것이다. 안경을 썼지만 렌즈를 낀 양 인공눈물을 넣어 진짜 눈물도 같이 흘려버렸다. 그 때 교수는 또 내 머리를 쳤다.
그들은 재미없다. 김영하의 소설을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화려한 언어로 치장한 그들은 그러나 내 눈에는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진실 앞에 서기 두려워하는 자들에 다름 아니다.
# by | 2008/01/12 16:31 | about me..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