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3월 01일
설거지
빨래, 설거지, 청소..
우리집 집안일의 99.99%는 엄마께서 하신다.
몇 달 전부터 이따금씩 내가 설거지를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엄마의 암묵적인 강제가 아니요,
문득 스쳤던 이 생각 때문이었다.
'엄마도 설거지 하기 싫을 때가 있지 않을까?'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자주 말했던,
'아, 귀찮아'
'오늘은 진짜 하기 싫다'
엄마한테서는 들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엄마께서 분명히 몸이 편찮으신 적이 있었을 텐데도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던 것이다.
죄송함의 눈물을 멈추고
나는 문득 '그렇다면 엄마께서 왜 나에게 집안일을 부탁하지 않으셨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답이 생각 났는데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몰라도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옆을 돌아보니
퇴근 후 TV를 보시면서, 이따금씩 부엌에 와선 '설거지가 건강에 좋은 것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오래산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부엌에 무슨 남자냐'라며 반찬 그릇 치우라고 하면 식탁에 올려놓고 가버리는 남동생.
그리고 공부하고 와서 피곤하다며 모르는 척 뒹구는 딸.
어차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좋든 싫든 이 '당연한' 꼴 면치 못할 것인데
그래, 지금이라도 실컷 놀아 둬라.. 라는 암묵적인 무언가.
생각해보니
나의 삶도 엄마의 삶과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남자들이 여자 아이돌 스타에 침 흘리고 있을 때
'나도 언젠가는, 나도 언젠가는!'이라며 공부에 매진하고
교사가 되어 남들 보기에 괜찮은 - 내 입장에선 박진감 없는 그저 그런 남편과 결혼 생활하고
딱히 똑똑하지도 않고 여느 사람들처럼 속터지는 자식 뒷바라지에
퇴근 후 남편은 TV 앞 동상, 나는 밀린 집안일..
내 월급의 50% 이상은 자식 교육비에 털어 넣고도
남은 돈 아까워 가사 도우미는 부르지 않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겠지.
교실에서 소리지른 대가로 노후 연금은 나오겠지만
그렇게 집안에서 사들어간 나의 삶에 대한 보상은
그
아무
데도
없다.
아주 짧은 시간에
나는 나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결론을 보게 된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위에서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여자이기 이전에 엄마이기 때문에
인고가 미덕인 것은
정말 싫다.
지인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살 바에야
번 돈으로 적당히 놀고 적당히 남자 만나다가
예정대로 37살에 자살하는 게 낫겠어.
# by | 2010/03/01 14:14 | 트랙백 | 덧글(1)


